성범죄 전담 재판부 판사 역임, 강창효 변호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성범죄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으로서, 가해자에게 징역 7년의 중형을 이끌어낸 사건을 소개하려 합니다.
틴더에서 만나 교제를 시작한 남자가
- 수차례 강간과 유사강간을 저지르고
- 피해자의 내밀한 영상을 텔레그램 채널에 반포하고
- 미성년자에 대한 성착취물까지 제작·배포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꺼낸 한마디였습니다.
“우리는 BDSM 커플이었고, 모든 행위는 합의된 SM플레이입니다.”
모든 것이 합의하에 이뤄졌다는 프레임을 꺼내든 것입니다.
자칫 가해자의 이러한 주장이 여러 정황 속에서 설득력을 갖춘다면, 중형은 커녕 단 1개월의 실형도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성범죄피해자변호사, 선임하면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나요?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기본적으로 증인의 지위에 섭니다.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고 재판을 이끌어가지만, 검사는 국가의 대리인이지 피해자 개인의 대리인은 아닙니다.
피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정리하고, 피해자에게 유리한 증거와 논리를 별도로 재판부에 전달하는 역할은 성폭력 피해자 변호사의 몫입니다.
특히 이 사건처럼 피고인이 “합의된 행위”라는 방어 논리를 내세우는 경우, 피해자 측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반박하지 않으면 재판부가 피고인의 논리에 끌려갈 수 있습니다.
검사도 물론 반박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가장 절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의 대리인입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받은 혐의를 보면 그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강간죄(형법 제297조)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카메라등이용촬영물 반포(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2항)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항)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법정형이 아무리 높아도, 피고인이 “합의된 행위였다”는 프레임을 관철시키면 혐의 자체가 흔들립니다. 피해자 변호사의 핵심 역할은, 바로 이 방어 논리를 정면에서 깨뜨리는 데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세 가지 핵심 주장으로 모든 혐의를 부인했고, 저는 그 세 가지를 전부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합의된 SM플레이였다? — 피고인의 방어 논리를 무너뜨린 과정
피고인의 방어 전략은 간명했습니다.
- 첫째, 피해자와 BDSM 커플이었으므로 강간이 아니라 합의된 가학적 성관계였다.
- 둘째, 유사강간은 발생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공황장애로 집 밖에 나간 것이다.
- 셋째, 모든 성적 영상은 피해자의 동의하에 촬영되었고 텔레그램 반포도 피해자가 알고 있었다.
하나라도 통하면 해당 혐의가 무너지고, 세 개가 다 통하면 사건 전체가 뒤집힙니다.
성범죄피해자변호사로서 저는 엄벌탄원 의견서를 통해 각 주장의 허점을 하나하나 짚어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1) “BDSM 합의가 있었다”는 주장
BDSM 커플 사이의 가학적 성관계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아니려면 ‘양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말이 어렵지요?
가령 권투 시합에서 상대를 때리는 것은 폭행죄가 되지 않는데, 양 선수가 서로 맞는 것에 ‘양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 법률은 양해라는 표현을 씁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양해가 없었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는 순간 즉시 멈출 수 있는 안전장치 — 이른바 ‘세이프워드’의 부재였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세이프워드가 전혀 없었습니다. 가학적 성관계를 거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어떤 합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BDSM 관계에서 한쪽이 특정 단어를 말하면 즉시 모든 행위를 중단하기로 사전에 약속하는 안전장치입니다. 예를들어 세이프워드를 ‘위험’이라고 정했을 경우, 한쪽이 ‘위험’이라고 하면 BDSM 행위를 전면 중단하는 것이죠. 세이프워드가 없다는 것은, 상대방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행위를 멈출 수 있는 수단 자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아파요라고 하면 그만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촬영된 영상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영상 속 피해자는 명백히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있었고, 피고인은 이를 무시한 채 행위를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4건의 강간은 모두 별도의 합의 없이 갑자기 시작되었고, 피고인 스스로도 법정에서 각 범행 당시 피해자가 화가 난 상태였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순을 부각하며 “화가 난 상대에게 사전 합의도 없이 강제로 시작한 성관계를 어떻게 합의된 플레이라 할 수 있겠냐”며 재판부를 설득했죠.
재판부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BDSM 커플이라는 명목 하에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성관계로 인한 피해를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 “유사강간이 아니라 공황장애”라는 주장
피고인은 유사강간 사실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피해자가 당시 공황상태에 빠져 집 밖으로 나간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인데요.
이 주장을 깨뜨린 것은 CCTV 영상이었습니다.
범행 직후 건물 CCTV에는, 피해자가 옷매무새도 정돈하지 못한 속옷차림으로 급히 집을 빠져나와 계단을 이용해 한 층 위로 올라가 건물 구석에 숨는 장면이 찍혀 있었습니다. 핸드폰도, 지갑도, 신발도 없이 뛰쳐나온 것이었습니다.
공황장애로 집을 나갔다면 건물 밖 넓은 공터로 나가 몸을 진정시키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오히려 건물 안쪽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이것은 공황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도망쳐 숨는 사람의 행동이었습니다.
수 분 뒤 피고인도 밖으로 나와 피해자를 찾아다녔고, 건물에 숨어있던 피해자를 찾아낸 뒤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피해자의 옷차림과 도주 경위를 종합하면, 피해자가 도망쳐 나오기 직전 성적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추론됩니다.

저는 이 CCTV 영상의 정황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여 재판부에 전달했고, 재판부 역시 피해자의 진술대로 강제적 유사성행위에 놀라 도망쳐 나온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3) “촬영과 반포 모두 동의했다”는 주장
피고인은 성적 촬영물이 모두 피해자의 동의하에 제작되었고, 텔레그램 반포도 피해자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진술과 객관적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면, 이 주장에는 여러 가지 허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촬영에 관해서입니다.
피해자는 교제 초기부터 피고인으로부터 “혼자 보는 용도”라는 말을 들었으며, 유포를 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일부 촬영에 응했습니다.
그러나 강간을 당하는 상황에서의 촬영은 동의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실제로 촬영된 영상 중 일부에서는 피고인이 “영상을 찍으면 헤어져주겠다”고 하여 이별의 조건으로 촬영을 강요한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상대는 “성관계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가 촬영에만 동의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펼쳤던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재판부에 제출했고, 재판부는 촬영과 반포 모두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결과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와 함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및 장애인관련기관에 각 3년간 취업제한, 형 집행 종료 후 5년간 보호관찰, 성폭력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가 명해졌습니다.

양형의 이유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연인사이였던 피해자에 대하여 본인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피해자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이용하였고, 잔혹한 방식으로 피해자의 인격을 무너뜨려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악화시킨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들었습니다. 아울러 피고인이 모든 범행을 부인하며 진지한 반성이 의심된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성범죄전문변호사로서 피해자의 곁에서 엄벌탄원 의견서를 통해 재판부에 전달한 논점들 — BDSM 합의의 부존재, CCTV 영상의 정황, 촬영·반포 동의의 허구성, 피해자의 극심한 고통 — 이 판결에 반영된 결과라 생각합니다.
성범죄 피해 사건, 모든 사건에서 변호사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물증이 명확하여 다툼의 여지가 전혀 없거나 사실관계가 지극히 단순한 사건이라면, 변호사 선임의 실익이 없을 때도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굳이 선임까지 할 필요없이 30분 정도의 법률 상담 정도만 받으셔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해자의 방어 논리 앞에서 피해 사실 자체가 부정될 수 있는 경우에는 사선변호사 선임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보시길 바랍니다.
“합의된 행위였다”, “동의하에 촬영했다”는 주장이 법정에서 통하면, 피해자의 고통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성폭력 피해자 변호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합니다.
- 피해자의 진술을 보강하고
-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여 정황을 정리하고
- 피고인의 방어 논리를 법리적으로 반박하는 것
이것이 피해자 대리인의 역할이고, 이 역할이 결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성범죄 피해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혼자 감당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피고인이 아무리 정교한 변명을 세우더라도, 전문적인 조력이 있다면 그 변명은 무너집니다.
도움이 되셨길 소망하며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강창효였습니다.
성범죄피해자변호사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1. 성범죄 피해자도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형사소송법상 피해자는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여 의견서 제출, 증거 제출, 공판 참여 등을 할 수 있습니다. 검사가 국가를 대리하는 것과 별도로, 피해자 개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유리한 논점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Q2.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사선변호사를 따로 선임하는 이유가 있나요?
A. 성폭력범죄 피해자는 국선변호사를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국선변호사는 여러 사건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한 사건에 깊이 몰입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이 사건처럼 피고인의 방어 논리가 정교한 경우에는 그에 맞서 체계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전담 변호사의 조력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Q3. 수사 단계에서부터 선임하는 것이 좋은가요, 아니면 재판 단계에서 선임해도 되나요?
A. 가능하다면 수사 단계에서부터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사 초기에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증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두면 이후 재판 단계에서 피고인의 반박에 대응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Q4. 성범죄피해자변호사를 선임하면 형량에 실제로 영향이 있나요?
A. 피해자 변호사가 직접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엄벌탄원 의견서를 통해 피고인의 방어 논리를 반박하고, 범행의 중대성과 피해자의 고통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것은 양형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의 BDSM 합의 주장이 배척된 것이 징역 7년이라는 결과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Q5.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나가야 하나요?
A.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비공개 심리, 차폐시설 설치, 영상 중계 등의 보호조치가 가능합니다. 피해자 변호사는 이러한 보호조치를 신청하고, 법정에서 피해자 곁에서 조력하는 역할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