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전담 재판부 판사 역임, 강창효 변호사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사건은 준유사강간 혐의로 기소된 의뢰인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사례입니다.
2024년 법률사무소 개업 후 처음 수임한 성범죄 사건이고, 의뢰인이 20대 초반으로 어리기도 하여 더욱 신경이 쓰였는데요.
결국 목표한 대로 구속을 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앓던 이가 빠진 기분입니다.
의뢰인은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같은 학과 동기인 피해자, 그리고 또 다른 동기 한 명과 함께 저녁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1차에서 와인을, 2차에서 화이트 와인을 나누어 마셨고, 새벽 2시경 술자리가 끝난 뒤 의뢰인은 피해자와 함께 피해자의 자취방으로 이동했죠.
그곳에서 남은 술을 더 마시고 좁은 싱글침대에서 나란히 잠들었는데 — 그날 밤 벌어진 신체 접촉이 준유사강간으로 기소에 이른 것입니다.

이 사건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의뢰인은 수사단계에서 다른 로펌을 선임하여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정황만 놓고 보면, 다투어볼 여지가 충분한 사건이었고요.
그러나 제가 기록을 검토한 끝에 내린 판단은 달랐습니다.
녹취록, 카카오톡 대화, 참고인 진술 — 기록 곳곳에 혐의 부인 전략의 근간을 흔드는 증거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략을 선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혐의를 인정하고, 합의 성사와 양형 변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것이죠.
준유사강간죄의 성립조건과 법정형
준유사강간은 형법 제299조에 따라,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유사강간 행위를 한 경우 성립합니다. (만취, 약물 복용, 잠든 상태 등)
유사강간이란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삽입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의뢰인이 술에 취해 잠든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고 음부에 손가락을 삽입한 행위가 공소사실의 핵심이었습니다.
법정형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며, 벌금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록이 말해준 것, 그리고 전략의 선회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했던 판단은 혐의를 다툴 것인가, 인정할 것인가였습니다.
정황만 보면 다투어볼 여지가 있었습니다
의뢰인과 피해자는 같은 학과 동기로, 3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였습니다.
의뢰인은 피해자와 이른바 ‘썸’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DM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이전에 단둘이 전시를 보고 밥을 먹는 데이트를 한 적도 있었죠.
사건 당일에도 피해자가 의뢰인에게 자신의 자취방에서 재워주겠다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당시 의뢰인의 집은 대전이었고, 피해자는 술이 많이 취한 의뢰인에게 잠깐 자고 가라고 권유했는데요.
피해자의 자취방에 도착한 뒤에는 함께 남은 술을 더 마셨고, 의뢰인이 샤워 후 팬티만 입고 자도 되냐고 묻자 피해자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후 좁은 고시원 싱글침대 위에서 서로를 껴안은 채 잠들었고요.
이러한 정황만 놓고 보면, 피해자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진 접촉이라는 주장을 펼칠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록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건을 인수한 뒤 수사 기록과 증거 자료를 하나하나 살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부인 전략으로 재판에 임했을 때의 리스크가 지나치게 컸습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녹취록입니다.
피해자가 사건 직후 의뢰인과 나눈 전화 통화를 녹음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한 파일이 있었습니다.
이 녹취록 속에서 의뢰인은 사건 당시 피해자가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죠.

‘상호 합의’를 주장하려면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동의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의뢰인 본인의 발언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피해자가 사건 당일 밤 카카오톡으로 추궁하자, 의뢰인은 자신이 먼저 상황을 시작한 것은 맞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피해자가 잠든 상태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언급했죠.
범행을 인정하는 듯한, 내지는 유의미한 정황에 근거를 보태는 기록들이 군데군데 가득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당일 함께 술을 마셨던 동기의 참고인 진술까지 더해졌습니다.
이 동기는 의뢰인과 피해자가 전혀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고 진술했고, 이는 ‘상호 이성적 호감에 기반한 암묵적 동의’라는 논리를 정면으로 흔드는 증거였습니다.
의뢰인이 자발적으로 응한 폴리그래프 검사의 결과도 ‘진실’이 아닌 ‘판단불능’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혐의를 부인한 채 재판에 임했을 때 무죄를 받아낼 가능성보다 혐의를 끝까지 다투다가 반성의 여지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 양형에서 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로 속에서 어떤 카드를 꺼내 들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경험이 무척 풍부해야 합니다.
‘1심까지만 억울하다고 주장해보고,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어 구속되면 항소심에서는 싹싹 빌어보자’는 식의 아님말고 전략을 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혐의를 인정하고, 양형에 모든 힘을 집중했습니다
저는 의뢰인에게 기록 속 리스크를 솔직하게 설명했습니다.
의뢰인도 납득했고,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확정했죠.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합의였습니다.
검찰청에 피해자 국선 변호사의 연락처 열람을 신청하여 피해자측과 접촉하였고, 의뢰인의 진심 어린 사죄의 뜻을 조심스럽게 전달했습니다.
피해자는 의뢰인의 사과를 받아들여 합의에 응했고,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해 주었습니다.
합의와 병행하여, 의뢰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음을 증명할 양형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했습니다.
- 의뢰인이 직접 작성한 반성문
- 자발적으로 이수한 성폭력·성희롱 예방교육 7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5건, 한국이러닝인재개발원 2건)
- 사건 이후 안정된 직장에서 성실히 근무 중임을 증명하는 재직증명서
- 대학 재학 시절의 우수한 학업 성적을 증명하는 성적증명서 (4점에 육박하는 학점 등)
- 부친이 작성한 탄원서
특히 의뢰인이 법원에서 명하기도 전에 스스로 성교육 강의를 찾아 수강한 것은, 일시적인 후회가 아니라 잘못된 인식 자체를 바로잡으려는 구체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선고 결과
재판부는 의뢰인에게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 대한 3년간 취업제한이 병과되었고, 신상정보 공개·고지명령은 면제되었습니다.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황이 아니라 기록으로 전략을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정황상 유리해 보이는 요소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혐의를 부인하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녹취록, 메시지, 참고인 진술 등 기록 속에 치명적인 증거가 존재한다면, 부인 전략은 무죄를 받아내지도 못한 채 양형에서의 불이익이라는 더 큰 위험만 초래할 수 있죠.
반대로, 혐의를 인정하더라도 합의와 양형 자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정형 하한이 2년인 준유사강간이었지만, 합의 성사와 체계적인 양형 변론을 통해 실형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고,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 이것이 변호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이만 글 마치겠습니다. 강창효였습니다.
준유사강간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 준유사강간죄란 무엇인가요?
A. 준유사강간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유사강간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유사강간이란 성기·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삽입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술에 취해 잠든 피해자를 대상으로 이러한 행위를 한 경우가 대표적이며, 법정형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벌금형은 없습니다.
Q. 준유사강간 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양형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A. 피해자와의 합의, 특히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성범죄 양형기준상 ‘특별감경인자’에 해당합니다. 이를 통해 권고형 범위 자체가 감경영역으로 내려가게 되므로,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큽니다. 다만 합의가 성사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성의 진정성, 초범 여부, 범행의 경위와 내용 등 여러 양형 요소를 재판부가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Q. 수사단계에서 혐의를 부인하다가 재판에서 인정으로 전환해도 괜찮나요?
A. 전략의 변경 자체가 양형에 불이익을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재판 단계에서라도 범행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전략을 전환할 때는 기록 전체를 면밀히 분석하여, 부인을 유지하는 것과 인정으로 선회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의뢰인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변호사와 기록을 함께 검토한 뒤 결정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