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전담 재판부 판사 역임, 강창효 변호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직장상사로부터 준유사강간 피해를 입은 의뢰인을 대리하여, 고소전합의를 이틀 만에 완료한 사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리 의뢰인이 제시한 금액도 전액 수령하였습니다.
가해자 측으로부터 합의 연락을 받고, 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자 고민하고 계실 분께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어떻게 주도권을 쥘 수 있는지, 이 사건을 통해 보여드리겠습니다.
가해자 측에서 고소전합의를 요청해왔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성범죄 피해를 입은 뒤 가해자 측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뢰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피해회복을 해드리고 싶다”는 취지입니다.
이 연락을 받는 순간 피해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받아들여야 하나, 거절해야 하나. 합의하면 처벌은 어떻게 되나. 내가 원하는 금액을 요구해도 되는 건가. 혹시 합의했다가 나중에 불리해지는 건 아닌가.
고소 전 합의 방법을 고민하기에 앞서, 먼저 이 사건이 법적으로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준유사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유사성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법정형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벌금형이 없고 오직 징역형만 규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법이 이 범죄를 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무게감은 곧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협상력이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합의에 응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고소와 수사, 재판이라는 길고 무거운 절차를 감수해야 합니다.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없으면 양형에서도 큰 불이익을 받게 되고요.
결국 이 구도에서 주도권은 처음부터 피해자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그 주도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방법을 아느냐입니다.
방법을 모르면 가해자 측이 설계한 조건에 끌려다니게 되고, 알면 피해자가 원하는 조건을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끌려다니지 않는 합의, 어떻게 설계했나
이번 사건의 의뢰인은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준유사강간 피해를 입은 분이었습니다. 범죄 피해 자체도 끔찍했지만, 가해자와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의뢰인을 더욱 옥죄고 있었습니다.
의뢰인은 가해자를 처벌받게 하고 싶은 마음과, 하루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두 가지 선택지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설명드렸습니다.
고소를 선택하면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수사기관에 출석하여 피해 사실을 반복적으로 진술해야 하고 법정에서 증언대에 설 수도 있습니다.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이 과정이 의뢰인에게 줄 2차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고소전합의를 선택하면 신속하게 피해회복을 받고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지만,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사실상 어려워집니다.
설명을 마친 뒤 결정은 온전히 의뢰인의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 옳다고 유도하지 않습니다.
두 선택지 모두 장단점이 분명하고, 그 무게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사자 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의뢰인은 숙고 끝에 합의를 선택하셨고, 그 이후의 절차는 저에게 전적으로 맡겨주셨습니다.
의뢰인의 결정이 내려진 순간부터, 저는 세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1) 협상의 프레임을 피해자 측에서 먼저 잡았습니다.
피해자 대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가해자 측이 제시하는 금액과 조건에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저는 의뢰인에게 유사 사안의 최근 합의금 추세를 설명드린 뒤, 의뢰인이 납득할 수 있는 금액을 먼저 확정했습니다.
그 금액을 기준선으로 삼고 가해자 측과 협의에 들어갔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2) 합의서에 피해자 보호 조항을 빠짐없이 설계했습니다.
합의금을 받는 것만이 합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특히 이 사건처럼 가해자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경우, 합의 이후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 비밀유지 조항
- 접근금지 조항
- 직장 내 불이익 금지 조항
- 그리고 이를 위반했을 때의 제재 조항까지
합의서에 포함시켰습니다. 합의서 한 장이 합의 이후에도 의뢰인을 지켜주는 방패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3) 가해자 측의 절박함이 클 때 조건을 관철시켰습니다.
합의는 타이밍입니다.
가해자 측도 고소 전에 합의를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고, 이 시기를 놓치면 오히려 협상 동력이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수임 직후 곧바로 가해자 측 변호사와 협의에 들어갔고, 피해자의 조건을 중심으로 이틀 만에 합의를 마무리했습니다.
결과
고소전합의는 수임 후 이틀 만에 완료되었습니다.
의뢰인이 제시한 합의금이 전액 지급되었고, 비밀유지·접근금지·직장 내 불이익 금지 조항이 포함된 합의서가 체결되었습니다.

의뢰인은 수사기관 출석이나 법정 증언 없이, 실질적인 피해회복을 받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상황에 처한 분들께
같은 상황에 계신 분들께 한 가지만 당부드리겠습니다.
가해자 측에서 합의를 요청해왔을 때, 변호사 없이 직접 대응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 측에는 이미 변호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선임하지 않은 상태라도, 스스로 협상이 어려울 거라 판단되면 언제든지 덜컥 선임할 수 있죠.
이때 변호사가 설계한 합의 조건을 변호사 없이 검토하면,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항이 숨어 있어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합의금 액수만 보고 서명했다가, 정작 합의 이후의 보호 장치가 하나도 없는 합의서를 쥐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소 전 합의 방법이 고민되신다면, 합의 제안을 수락하기 전에 반드시 성범죄전문변호사와 먼저 상의하시길 바랍니다.
가해자 측이 제시한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조건을 중심으로 합의 구조를 새로 설계하는 것. 그것이 합의 과정에서 끌려다니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이만 글 마치겠습니다. 강창효였습니다.
고소전합의, 피해자가 자주 묻는 질문
Q1. 가해자 측 변호사에게서 합의 연락이 왔는데, 바로 응해도 되나요?
A. 합의 여부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선택입니다. 다만 가해자 측이 제시하는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변호사와 상의하여 피해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먼저 설계한 뒤 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가해자 측이 합의를 서두르는 상황일수록 피해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관철시킬 여지가 큽니다.
Q2. 고소전합의를 하면 가해자는 처벌을 안 받나요?
A. 고소 전에 합의하면 고소 자체를 하지 않게 되므로, 형사처벌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다만 합의금과 합의 조건을 통해 실질적인 피해회복을 받을 수 있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Q3. 합의금은 어떻게 정하나요?
A. 죄명의 법정형, 피해의 정도,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와 자력, 유사 사안의 최근 합의금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산정합니다. 가해자 측이 먼저 금액을 제시하더라도, 피해자 측에서 기준을 잡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Q4. 합의서에 꼭 넣어야 하는 조항이 있나요?
A. 합의금 액수와 지급 방법, 처벌불원 의사, 비밀유지 조항은 기본입니다. 사안에 따라 접근금지, 직장 내 불이익 금지, 불이행 시 제재 조항 등을 추가하여, 합의 이후에도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Q5. 합의했는데 가해자가 조건을 어기면 어떻게 하나요?
A. 합의서에 불이행 시 제재 조항(위약금, 합의 무효화 등)을 명시해두면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항이 없는 합의서는 가해자의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부족하므로, 작성 단계에서부터 빠짐없이 설계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