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전담 재판부 판사 역임, 강창효 변호사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사건은 헤어지는 연인이 앞으로 서로 지킬 약속을 정하면서 함께 촬영한 영상 한 편이, 몇 달 뒤 “성관계 영상으로 협박당했다”는 고소장이 되어 돌아온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사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제가 사건을 맡았을 때, 의뢰인의 혐의는 이미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죠.
카촬죄변호사를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는 이미 다른 곳에서 조력을 받고 계시던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사건도 그런 경우였고요.
먼저 선임되어 있던 대형 법무법인은 협박 혐의에 대해 “이는 협박에 해당합니다”라고 의견서에 명시한 뒤, 우발적인 발언이었다는 점을 들어 정상 참작을 구하는 방향을 잡아두었습니다. 의뢰인 역시 경찰 조사에서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라고 답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로 저에게 기록이 넘어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전략을 택했고 전체 혐의 모두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카촬죄변호사가 가장 먼저 짚는 성립조건과 법정형
흔히 ‘카촬죄’라고 부르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생각보다 넓은 그물입니다. 많은 분들이 ‘몰래 찍는 것’만 떠올리시는데, 조문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죠.
제14조 제1항은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행위를 처벌합니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고요.
문제는 제2항입니다. 촬영 당시에는 서로 동의했더라도, 그 이후에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퍼뜨렸다면 똑같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동의는 ‘찍는 것’에 대한 동의였지 ‘퍼뜨리는 것’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죠. 연인 사이에 합의하에 남긴 영상이 이별 후 형사사건이 되는 경로가 대개 여기입니다.
그리고 제14조의3, 촬영물등이용협박이 있습니다. 촬영물을 이용해 사람을 협박한 경우인데요.
이 죄에는 벌금형이 없습니다. 1년 이상의 유기징역뿐입니다.
(촬영물등이용협박에 관해서는, 2026년 초 무죄 사건도 포스팅해두었습니다.)
실제로 영상을 퍼뜨리지 않았더라도, 퍼뜨리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만으로 성립할 수 있다는 점도 무섭습니다. 여기에 유죄가 인정되면 신상정보 등록과 공개·고지, 취업제한까지 줄줄이 따라붙고요. 형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닌 구조입니다.
카촬죄 전문 변호사를 찾는 분들이 대개 절박한 심정으로 검색창을 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의 발언, 한 번의 전송으로 남은 인생의 모양이 달라질 수 있는 죄이기 때문이죠.
다만 조문을 자세히 보시면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촬영이든 반포든 협박이든, 결국 ‘의사에 반하여’ 또는 ‘협박하여’라는 요건이 붙어 있다는 것.
즉 이 죄들의 승부처는 무슨 행동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행동에 어떤 고의가 있었느냐입니다. 이 사건도 정확히 그 지점에서 갈렸습니다.
카촬죄변호사로서 잡은 변호 전략
이 사건은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덩어리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영상과 관련된 협박 혐의, 다른 하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과 사진에 관련된 혐의였죠. 저는 이 둘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루었습니다.
1) 이미 인정 쪽으로 기울어 있던 사건이었습니다.
먼저 말씀드린 대로, 협박 혐의는 사실상 다투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의뢰인이 “영상을 퍼뜨리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 자체는 영상에 그대로 담겨 있었으니까요. 발언이 녹화되어 있는데 무엇을 다투겠느냐,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판단을 일단 접어두고 영상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2분 13초짜리 하나, 7분 2초짜리 하나. 짧다면 짧은 분량이지만 이 안에 사건의 전부가 들어 있었죠.
그리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이상한 점이 보였습니다.
2) 영상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은 의뢰인이었습니다.
협박이라고 하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십니까. 위협하는 사람이 있고, 겁에 질려 위축된 사람이 있겠죠.
이 영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의뢰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상대방은 의자에 양반다리로 앉아 전자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의견서에 이 장면을 반드시 직접 확인해 달라고 적었습니다. 글로 옮긴 몇 줄보다 영상 10초를 보는 편이 훨씬 분명했기 때문이죠.

여기에 더해, 영상을 찍자고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짚었습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지킬 내용을 문서로 남기려다 펜이 없어 영상으로 대신했고, 촬영은 상대방의 휴대전화로, 서로 번갈아 가며 했습니다.
다 찍은 뒤에는 그 자리에서 함께 돌려보고 내용을 확인했고, 상대방이 직접 카카오톡으로 의뢰인에게 파일을 보내주었습니다.
협박할 생각이었던 사람이 자신이 협박하는 장면을 상대방 휴대전화로 남겨두고, 그 파일을 받아 보관하겠습니까. 저는 이 질문을 의견서 전면에 세웠습니다.
3) 조건을 밀어붙인 쪽은 오히려 상대방이었습니다.
영상의 내용은 두 사람이 앞으로 석 달간 지킬 조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대화였습니다. 연락과 만남을 어떻게 할지, 서로의 생활에 어디까지 간섭하지 않을지, 그동안의 금전 관계는 어떻게 정산할지.
상대방은 대화 내내 자신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그 자리에서 수정했습니다.
문제가 된 조건은 그 논의의 맨 끝에 나옵니다. 의뢰인이 영상 유포에 동의한다는 조항을 넣자고 하자, 상대방은 처음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의뢰인이 “거 봐, 그럼 안 되잖아. 하지마”라며 물러섭니다.
물러선 쪽이 의뢰인이었다는 것. 이 대목이 이 사건의 분수령이었습니다.
정말로 영상을 퍼뜨리기로 마음먹고 통보하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거절하든 말든 “그러면 올린다”고 밀어붙였겠죠. 상대의 거절 한마디에 “하지마”라며 조건 자체를 거두는 사람은 겁을 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그 뒤에 조건을 되살린 쪽은 상대방이었습니다. “알겠어, 뿌려”, “안 지키면 뿌리라고”, 그리고 “나도 신뢰를 주기 위해서 영상을 그렇게 한다고 했고”라는 말까지 스스로 덧붙였습니다. 자신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담보로 그 조항을 받아들인 것이죠.

저는 이 대화를 발언 순서 그대로, 누가 무슨 말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 빠짐없이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일부 문장만 떼어내면 협박이지만, 앞뒤를 붙여 놓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4) 퍼뜨리려던 사람의 흔적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고의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말보다 흔적이 힘이 셉니다. 그래서 저는 의뢰인이 영상을 유포하려 했다면 남았어야 할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습니다.
- 유포에 쓸 계정을 만든 사실 없음
- 올릴 곳, 올릴 시기를 정해둔 사실 없음
- 따로 업로드용 파일을 준비한 사실 없음
- 대화 이후 “안 지키면 올리겠다”고 다시 압박한 메시지 없음
오히려 남아 있는 흔적은 정반대를 가리켰습니다. 의뢰인은 그 일이 있고 나서도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며 연락을 이어갔고, 상대방이 식사를 제대로 못 한다고 하자 배달 상품권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협박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사람의 행동은 아니죠.
여기에 하나 더. 의뢰인은 그 영상이 세상에 퍼져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겠다만 제가 볼 적에는 해당 영상이 유포될 시 잃을 게 더 많은 사람은 우리 의뢰인이었습니다.
5) 인터넷 게시글은 애초에 의뢰인이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머지 두 혐의, 그러니까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비방 글과 사진에 관한 부분은 다툼의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건 “고의가 없었다”가 아니라 “내가 한 일이 아니다”를 증명하는 문제였죠.
의뢰인의 휴대전화는 이미 압수되어 디지털 포렌식까지 마친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 결과를 뒤져 세 가지를 끌어냈습니다.
첫째, 글이 올라간 시각과 의뢰인이 해당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의 시각이 맞지 않았습니다. 글을 쓴 사람이라면 작성 시점 무렵의 접속 기록이 남기 마련인데, 의뢰인에게는 그게 없었습니다.

둘째, 글이 작성된 IP 주소들은 VPN을 거친 유동 아이피로 보였고, 의뢰인의 기기나 의뢰인이 쓰던 네트워크와는 아무런 연결점이 없었습니다.
셋째, 휴대전화 어디에서도 그 글을 작성하거나 전송한 흔적, 문제가 된 사진을 보관한 흔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 개 혐의 전부 ‘혐의없음’ 불송치
경찰은 촬영물등이용협박, 명예훼손, 촬영물반포 세 혐의 모두에 대하여 증거 불충분,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느 하나 일부 인정된 것 없이, 문제된 전부가 수사 단계에서 마무리된 것입니다.

결정서에 적힌 판단 근거를 보면 이렇습니다.
- 고소인이 낸 음성파일이 통화 녹음 원본이 아니라, 재생한 소리를 다른 휴대전화로 다시 녹음한 것
- 그 녹음의 무결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왜곡되어 있다는 점
- 고소인이 “전화 통화 중 협박당했다”고 했다가 “거주지에서 단둘이 만났다”로 진술을 번복한 점
-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영상의 내용이 오히려 고소인의 협박 주장과 배치된다는 점
- 의뢰인의 휴대전화에서 성관계 영상 파일 자체가 확인되지 않은 점
- 게시글 IP의 실사용자를 의뢰인으로 볼 수 없고, 제3자가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제가 의견서에 담아 제시한 논리가 결정서에 거의 그대로 담겼습니다. 카촬죄변호사에게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죠.
말을 했다는 사실이, 곧 유죄는 아닙니다
이 사건이 남긴 의미는 분명합니다.
의뢰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영상에 그대로 담겨 있었고, 본인도 부인하지 않았죠. 그래서 누구도 다툴 수 없는 사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협박죄는 문장을 처벌하는 법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겁을 주어 그 의사를 꺾으려는 고의가 있었는지를 처벌하는 법이죠. 그리고 그 고의는 문장 한 줄이 아니라, 그 문장이 놓인 자리 전체를 봐야 드러납니다. 누가 무릎을 꿇고 있었는지, 누가 조건을 거두었고 누가 되살렸는지,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요.
혹시 지금 비슷한 상황에 놓여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조사에서 인정한다고 답했더라도, 이미 방향이 정해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기록 전체를 다시 들여다볼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진술은 조서의 한 줄이고, 사건은 기록 전체에 있으니까요.
카촬죄 전문 변호사를 찾고 계시다면, 무엇보다 내 사건의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읽어줄 사람인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에서 결과를 바꾼 것도 새로운 증거가 아니라, 이미 수사기관 손에 있던 영상 9분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끝까지 본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죠.
카촬죄변호사에게 자주 묻는 질문
Q1. 서로 합의하고 찍은 영상인데도 카촬죄가 될 수 있나요?
A. 촬영 자체가 동의하에 이루어졌다면 촬영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2항은 촬영 당시 동의가 있었더라도 이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포·판매·제공·전시한 경우를 따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동의는 찍는 행위에 대한 것이지 이후의 유통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연인 사이에 남긴 영상이 이별 후 형사사건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대부분 여기입니다.
Q2. 실제로 유포하지 않고 말만 했어도 처벌되나요?
A.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3은 촬영물을 이용하여 사람을 협박한 행위 자체를 처벌하므로, 실제 유포가 없었더라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립의 관건은 협박의 고의입니다. 상대에게 공포심을 일으켜 그 의사를 꺾으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를 대화의 전체 맥락, 당시 정황, 이후의 행동까지 종합해 판단하죠. 카촬죄변호사가 사건을 검토할 때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Q3. 이미 조사에서 인정한다고 진술했는데, 되돌릴 수 있나요?
A. 수사 단계의 진술은 확정판결이 아닙니다. 다만 한 번 인정한 내용을 뒤집으려면 단순히 말을 바꾸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왜 그렇게 진술하게 되었는지와 객관적 자료가 어떤 그림을 보여주는지를 함께 설명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도 인정 진술이 있는 상태에서 영상과 포렌식 자료를 다시 정리하여 전부 혐의없음 결정을 받았습니다. 다만 되돌리기가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므로, 조사에 임하기 전에 검토를 받아보시는 편이 훨씬 안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