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재판부 판사 역임, 강창효 변호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 의뢰인 2명이 피해자를 합동으로 강간했다는 특수강간죄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전원 무죄가 선고된 사례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억울한 성범죄 혐의로 유무죄를 다투고 계신 분이라면, 이 글에서 해결책을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무척 대담하고 영악했습니다.
거짓을 꾸미는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말의 앞뒤가 안 맞기 시작하자,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메모를 준비하여 이를 진술용 대본으로 삼은 것인데요.
사전에 작성한 이 메모를 제2회 경찰조사 때부터 꺼내들더니, 급기야 법정 증인석에까지 들고 올라와 시종일관 낭독을 하듯 진술하였습니다.
수사관의 질문에도, 검사의 주신문에도, 이 메모를 읽어 내려가며 답변했죠.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저의 전투욕만 상승시켜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가장 큰 패착이 되었습니다.

법정 공방 당시, 저는 재판부에 이 메모를 증인석에서 치워줄 것을 요청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다이나믹한 공방이 오가는 과정에서 기필코 무죄를 받아내리라 연신 다짐했는데, 끝내 무죄가 선고되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특수강간죄의 성립 요건과 법정형은?
특수강간 무죄는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한 채, 또는 2명 이상이 합동하여 폭행·협박으로 강간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법정형은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판사가 최대한 감형하더라도 3년 6월이 하한선이고, 3년을 넘는 형량에는 집행유예를 붙일 수 없으므로 유죄가 선고되면 무조건 실형입니다.
게다가 우리 의뢰인들은 혐의를 강경하게 부인하는 입장이었고, 따라서 반성을 하거나 피해자와 합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만일 무죄가 선고되지 않았다면 더 중한 형이 선고되었을 겁니다.
이렇듯 무거운 죄를 억울하게 뒤집어쓴다면 그 고통이 어떨지. 감옥에 있는 내내 부아가 치밀어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우리 의뢰인들 정말 다행입니다.

의뢰인 2명은 각각 영철, 정수라고 부르겠습니다.
영철과 정수는 피해자와 한 객실에서 함께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이 부분은 양측 모두 인정하는 바였고, 합의에 의한 것이었느냐 강간이었느냐가 갈라지는 지점이었습니다.
피해자 측에는 CCTV 영상이나 신체 상처, 의류 훼손 같은 물적 증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증거는 오직 피해자 본인의 진술뿐이었죠.

유일한 증거인 만큼, 저는 피해자의 진술 기록부터 면밀히 살폈습니다.
겉보기에는 나름 신빙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 겹씩 들여다볼수록 그렇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는 최초 진술과 자필 진술서, 제1회 경찰 조사 — 이 세 번의 조사까지는 프리스타일로 진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2회 경찰 조사부터 양상이 확 바뀌었습니다.
네, 문제의 메모가 등장한 것입니다.
사전에 정리해 온 메모를 펼쳐놓고, 수사관의 질문에 그것을 읽어 내려가며 답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죠. 이러면 일관성이 흔들릴 래야 흔들릴 수가 없습니다.

앞선 세 차례의 진술 당시에는 없는 기억을 가지고 소설을 쓰느라 영철이 어땠고 정수가 저쨌고 말이 매번 달랐는데,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위기감을 느껴 아예 소설책을 가지고 다니기로 결심한 모양입니다.
“피해자가 기억을 정리해와서 보면서 말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요? 오히려 성실하게 준비한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자료를 봤느냐 안 봤느냐가 아닙니다.
자료를 볼 때와 안 볼 때의 진술 품질 차이가 극단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겪은 일이라면 세부 순서야 뒤섞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 읽을 거리가 사라질 시 핵심적인 사항조차 답하지 못할 정도라면, 이건 기억을 정리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지어낸 것에 가깝습니다.
피해자가 바로 그랬습니다. 메모가 없으면 이 사건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조차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태도는 법정까지 이어졌는데, 검사는 주신문 당시 마치 스무고개 게임을 하듯 “네”,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폐쇄형 질문만을 사용하여 피해자가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도록 도왔고 –
저의 반대신문에 대해서는 대번에 일관성이 흐뜨러지거나, 아주 단순한 질문에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답변을 고수했습니다.

이에 저는 재판장님께 피해자가 들고 온 서류를 증인석에서 치워달라고 요청했고, 재판장님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특수강간죄 혐의, 어떤 허점을 파고들었나
진술 태도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진술의 내용 자체에도 넘어갈 수 없는 모순과 의문이 곳곳에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수십페이지 분량의 변론요지서에 이를 빠짐없이 담았습니다.
1) 성관계의 순서에 관한 진술이 다섯 차례 모두 달랐습니다.
피고인 둘 중 누가 먼저 피해자의 신체에 성기를 삽입했는지 — 이것은 공소사실 입증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피해자의 진술은 임의동행보고서, 자필 진술서, 제1회 경찰 조사, 제2회 경찰 조사, 법정 증언에 이르기까지 이 순서가 전부 달랐습니다.
세부적인 디테일이 헷갈린 수준이 아니라, 사건의 핵심 골격 자체가 매번 바뀐 것입니다.

2) 피해자는 자필 진술서에 “자연스럽게 옷을 벗겼다”고 적었습니다.
강간을 당한 사람이 옷이 벗겨지는 상황을 직접 손으로 적으면서 “자연스럽게”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같은 진술서에 피고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력을 행사했는지는 한 줄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내용은 오히려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딱 들어맞는 정황이었습니다.
3) 피해자 스스로도 “때리지 않았다”, “상처도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묘사한 유형력은 ‘팔이나 다리를 잡거나 눌렀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피해자 본인도 “때리지 않았다”, “상처가 생긴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고, 옷이 찢어지거나 단추가 뜯어지거나 지퍼가 고장 난 사실도 없었습니다.
4) “암막커튼이라 아무것도 안 보였다”는 진술은 거짓이었습니다.
피해자는 당시 객실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객실에 설치되어 있던 것은 암막 커튼이 아니라 빛이 잘 새어드는 반투명 블라인드였습니다.
사건 발생 시각은 오전 10시경. 한겨울이라 해도 이미 해가 환하게 뜬 시각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는 말이 사실일 수 없었죠.
이 모순을 추궁하자 피해자는 “어두운 커튼이어서 암막커튼이라고 했다”고 했다가, 곧바로 “창문을 가린다는 의미에서 커튼이라고 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5) 성관계 직후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코트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성관계가 끝난 뒤 피해자는 피고인들에게 ‘코트가 정수의 차에 있으니 가져다 달라’고 말했습니다. 정수는 코트를 찾아 2층 객실로 가서 건네주면서 ‘왜 그러냐, 얘기 좀 하자’라고 말했고, 피해자는 그 요청에 응하여 문을 열어주기까지 했습니다.
방금 강간을 당한 사람이 가해자에게 코트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코트를 찾아 건네주며 ‘얘기 좀 하자’고 다가오는 가해자의 모습도, 그런 가해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피해자의 모습도 강간 범행이 있었다면 존재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6) 사건 다음 날 통화에서 피해자는 폭행이나 강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사건 다음 날 피고인들과 피해자 사이에 전화 통화가 있었습니다. 피고인들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입장을 반복하면서, 피해자에게 어떤 점이 불쾌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강제로 삽입당했다거나 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습니다.
피고인들이 계속 불쾌함의 이유를 묻자, 피해자는 영철의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기분이 나빠 성관계를 중단했다고 했습니다.

강간 피해를 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불쾌했던 이유로 욕설 내용만 꺼낼 리가 없습니다.
7) 합의금을 노린 고소였다는 정황도 확인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친구는 사건 직후 영철과 정수에게 “그래서 오빠들 합의할 생각이 있어요?”라며 여러 차례 합의를 타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들의 지인을 통해 피고인들의 재산이 어느 정도 되는지까지 알아보았습니다.
해당 지인이 작성한 사실확인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친구는 “그 오빠들 돈은 얼마나 모아놨어?”라고 물었고, 답을 듣더니 “그럼 합의는 어렵겠네”라고 반응했습니다.
이후 피해자 측이 또다시 합의 의사를 물었을 때, 정수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것뿐인데 뭘 합의를 하느냐’고 되묻자 피해자 측은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할 말이 없을 것 같애”라며 통화를 끊었습니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처음부터 합의금을 염두에 두고 피고인들을 고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
법원은 피해자 진술 등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이 합동하여 폭행·협박으로 피해자를 강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피고인들에게 각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 피해자의 진술이 이 사건 공소사실과 오히려 상반되며 피고인들의 진술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
- 주요 상황에 관하여 진술이 구체화되거나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면서도 핵심적인 행동에 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거나 일관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같은 상황에 처한 분들께
끝으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의 의뢰인들은 처음부터 저희 사무실에 사건을 맡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사단계에서는 성범죄로 유명세가 있는 다른 로펌에 맡겼지만, 담당 변호사와 연락이 원활하지 않고 방어 전략도 구체적이지 않아 불안감이 커졌다고 했는데요.
그러다가 결국 저를 찾아온 겁니다.
특수강간 무죄은 유죄가 선고될 시 최소 3년 6개월의 실형이고, 더군다나 의뢰인들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고 유무죄를 다투고 있었기에 그 이상의 형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나 불안했을지.
이처럼 촌각을 다투는 성범죄 사건에서 변호인을 교체하느라 뜬 시간을 보내선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잘못 되어가는 것 같을 때는 교체하는 것이 맞지만, 애시당초 올바른 선택을 하여 교체할 일이 없도록 함이 이상적이겠죠.
그러니
- 지금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이지만 교체를 고민하고 있거나
-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이라면
아래 글을 꼼꼼히 읽어보시고 피해 없길 바라겠습니다.
도움이 되었길 소망하며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강창효였습니다.
특수강간죄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1. 특수강간죄가 성립하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한가요?
A. 2명 이상이 합동하여 폭행 또는 협박으로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한 상태에서 강간해야 성립합니다. 단순히 여러 명이 성관계를 한 것만으로는 성립하지 않으며, 폭행·협박의 정도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Q2. 특수강간죄로 유죄가 선고되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나요?
A. 법정형이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므로, 작량감경을 받더라도 최소 3년 6개월이 하한선입니다. 3년을 초과하는 형량에는 집행유예를 붙일 수 없어 유죄가 확정되면 사실상 실형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Q3.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사건에서도 무죄가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 그 진술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거의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의 높은 증명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진술의 일관성, 합리성, 객관적 정황과의 부합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여 합리적 의심이 남으면 무죄가 선고됩니다.
Q4. 성범죄 사건에서 변호인을 중간에 교체해도 되나요?
A. 현재 변호인의 방어 전략이 납득되지 않거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면 교체를 고려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교체에 소요되는 시간이 곧 방어 준비의 공백으로 이어지므로, 처음부터 신중하게 선임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Q5. 합의 없이 무죄를 다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A. 이번 사례처럼 합의 없이 전원 무죄를 받아낸 경우도 있습니다. 합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변호인이 사건 기록을 얼마나 꼼꼼히 분석하여 피해자 진술의 모순과 객관적 정황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느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