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전담 재판부 판사 역임, 강창효 변호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흥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신 종업원과 손님 사이의 일이, 정산 문제로 다투던 끝에 하루아침에 강간 사건으로 둔갑해버린 사례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우리 의뢰인은 그날 처음 본 상대방과 상호 동의하에 스킨십을 나누었을 뿐인데, 몇 시간 만에 “반항하지 못하게 때린 뒤 간음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채 피의자 신분이 되어 있었죠.
문제의 발단은 성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유흥주점의 요금 정산 다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상대방은 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웨이터에 의해 퇴실 조치되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정산에 불이익이 생겼다며 의뢰인에게 반복적으로 항의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후 의뢰인이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자, 통화가 끊긴 지 불과 10여 분 만에 “고소하겠다”는 문자가 날아왔고, 같은 날 오후 실제로 강간고소가 접수되었습니다.
성범죄는 이렇다 할 물증없이 피해자의 진술만 일관되더라도 처벌될 수 있고 더욱이 강간죄는 벌금형이 없기 때문에 유죄가 인정되면 징역형입니다. 집행유예도 징역형의 일종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할 적에 잘못한 게 없고 100% 떳떳하더라도 초기 경찰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수습하는 것만이 상책입니다.
강간고소, 진술만으로 처벌될 수 있을까
강간으로 고소를 당하면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이런 의문을 품습니다. “상대방 말 한마디로 정말 처벌이 되는 건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진술은 강력한 증거이지만 진술만으로 처벌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단순히 신체접촉이나 성적 접촉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하며
- 나아가 실제 간음 사실까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고소가 접수되었더라도 죄가 성립하지 않죠.
문제는 이런 사건이 대개 둘밖에 없는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목격자도, CCTV도 없다 보니 자칫 ‘누구의 말이 더 믿을 만한가’의 싸움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강간 고소를 당한 피의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일이 사건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강간죄는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벌금형 없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만이 규정된 중범죄이고, 유죄가 인정되면 실형은 물론 신상정보 등록과 취업제한까지 뒤따르죠.
인생 전체가 걸린 사안인 만큼, 상대방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는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하는 것입니다.
변호 전략
이 사건에서 저는 의뢰인의 해명을 되풀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이 “나는 안 했다”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사건 직후 스스로 남긴 자료가 훨씬 더 강력하게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간고소에 대응하는 핵심은, 결국 상대방의 진술을 상대방 자신의 흔적으로 무너뜨리는 데 있었습니다.
1) 사건 직후 통화 어디에도 ‘피해 호소’가 없었습니다
의뢰인은 상대방이 사건 직후 걸어온 전화 세 통을 녹음해 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정식 녹취록으로 만들어 의견서와 함께 제출했는데요.
녹취록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상대방이 “왜 나를 때렸느냐”, “왜 강제로 했느냐”고 항의하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통화 내내 상대방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였죠. 자신이 왜 방에서 빠지게 되었는지, 그로 인해 TC 정산에 불이익이 생기는지 여부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통화는 의뢰인을 다정하게 부르는 말로 시작되기까지 했습니다. 10회 이상 구타당하고 강간을 당한 직후의 사람이, 가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정산 이야기부터 꺼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2) 상대방의 문자가 오히려 강간의 부존재를 자백하고 있었습니다
통화만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의뢰인이 전화를 받지 않자, 상대방은 감정적인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요.
그 문자에는 “ㅋㅋ아프냐?”, “어쩐지 너랑 안하고 싶더라니”와 같은, 강간 피해자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조롱 섞인 표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어쩐지 너랑 안하고 싶더라니”라는 말은, 애당초 성관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상대방 스스로 인정하는 대목이었죠.

다음 날 보낸 문자에서도 상대방은 “웨이터가 너 자는데 내가 빼기고 있었다면서… 블랙시켰어”라며, 오로지 자신이 업소에서 블랙 처리된 것에 대한 억울함만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강간 피해가 아니라 업소 내 처우 문제가 이 분쟁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3) 신고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분 단위로 정리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산 문제로 세 차례 통화 → 조롱 섞인 문자 → 의뢰인의 연락 회피 → “성폭행범으로 고소야”라는 문자 → 실제 신고.
이 흐름을 분 단위로 늘어놓고 보면, 신고의 동기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통화가 끊기고 불과 10여 분 뒤 고소 협박 문자가 날아왔고, 그럼에도 의뢰인이 응답하지 않자 그로부터 다시 30여 분 뒤 112 신고에 이르렀죠.
실제 강간 피해에 기반한 신고가 아니라, 자신의 연락을 무시하는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범죄 고소를 꺼내 든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4) 강간죄의 구성요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폭행·협박을 인정할 자료가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간음 사실 역시 증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상대방의 신체에서 정액 반응조차 검출되지 않았는데요.
이는 삽입이 이루어졌다는 상대방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객관적 정황이었습니다.
의뢰인의 진술은 수사 초기부터 일관되었고, 이러한 객관적 감정 결과와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결과
담당 수사관은 사건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증거불충분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강간고소로 시작된 이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지도 법정에 서지도 않은 채 경찰 단계에서 조기에 마무리된 것입니다.

불송치 결정서에는 녹취록과 메시지 내역에서 상대방이 강간 피해에 대해 항의하는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이것이 “정산 문제로 불이익이 생길까 신고한 것 같다”는 의뢰인의 진술과 부합한다는 점, 정액 반응이 검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정했다는 진술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하여 상대방의 진술만으로는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명시되었습니다.
같은 상황에 놓이셨다면
이 사건의 의미는 단순히 의뢰인이 혐의를 벗었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어느 단계에서 벗었는지에 있죠.
허위로 고소당한 성범죄 피의자는,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사건이 검찰과 법원으로 넘어갈수록 점점 더 길고 무거워지죠.
설령 재판까지 가서 무죄를 받는다 해도, 그때까지 잃어버린 시간과 일상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강간 고소를 당했다면,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상대방이 스스로 남긴 흔적부터 붙잡아야 합니다. 사건 직후의 통화 녹음, 문자, 대화 내역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왜곡되기 쉽습니다.
이것들을 그대로 보존하여 제때 정리해 제출한다면, 이 사건처럼 결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의 진술이 사실과 다르다는 확신이 있으실수록,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객관적 자료를 냉정하게 챙기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억울한 고소를 당한 상황이라면 무혐의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 여성을 무고죄로 역고소하고 싶은 분도 계실 텐데, 맞다면 아래 사례를 이어서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강간고소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1. 상대방의 진술 말고 다른 증거가 없는데도 강간으로 고소당할 수 있나요?
A. 네, 진술만으로도 고소와 수사는 얼마든지 개시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고소가 접수되었다는 것과 처벌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과 간음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어야 하므로, 상대방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리면 혐의를 벗을 수 있습니다.
Q2. 강간 고소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나요?
A. 사건 전후의 통화 녹음, 문자, 메신저 대화 등 객관적 자료를 최대한 빠짐없이 확보하고 보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런 자료는 상대방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결정적 열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적으로 상대방과 연락을 주고받기보다는, 확보한 자료를 정리하여 수사 초기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3. 상대방이 신고를 취소하면 사건이 끝나나요?
A. 강간죄는 이른바 친고죄가 아니어서, 상대방이 고소를 취소하더라도 수사기관이 판단하기에 따라 수사가 계속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취소 여부에만 기대기보다는, 혐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객관적 자료로 입증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